불화에 대한 이러한 칭찬은 마키아벨리의 동 시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프란체스코 구이키아르디니는 회의에서 불만족을 찬양하는 것은 치료의 미덕 때문에 환자의 병을 칭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을 때 모든 것을 대변했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플로렌스의 공화 사상의 전통에 역행했다. 플로렌스는 모든 불화가 운명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전통과 함께. 파벌이 시민 자유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믿음은 13세기 말부터 레미지오 데 지롤라미, 브루네토 라티니, 디노 콤파니, 무엇보다도 단테는 평화롭게 사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의 자유를 위험에 빠뜨린 그들의 시민들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발표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표현하는 것처럼 로마의 장애는 최고의 칭찬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플로르의 가장 소중한 가설 중 하나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정통적인 믿음에 대한 공격에 대해 뉘우치지 않는다. 그는 로마에서 평민들과 귀족들 사이의 계속되는 충돌이 좋은 운명과 군대의 승리만이 될 만큼 혼란스러운 도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분명히 언급했다. 그것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는 로마의 무질서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종파 간 이해 관계의 승리를 막기 위해 봉사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최초라고 비난하고 있다. 나는 로마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비록 불화가 그 자체로는 사악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악이었다고 결론짓는다.
마키아벨리는 계속해서 혼합 헌법이 필요하긴 하지만, 자유가 보존되는 것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아직도 그가 다시 경고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익보다는 자신의 야망에 더 전념하고 있고, 필요에 의해서만 좋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중도 성향의 시민들과 이익 단체들이 이기적이고 파벌적 목적을 위해 헌법의 균형을 바꾸려는 영구적인 경향이 생기고, 이로 인해 내부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패의 씨앗을 정치적으로 몸에 심고 자유를 위태롭게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유의 대가는 끊임 없는 경계라고 주장하는 헌법적 제안을 한가지 더 내놓았다. 개별 시민이나 정당이 안전한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위험 신호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그러한 비상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 법과 제도를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공화국은 시민들이 선한 일을 하지 않고 그러한 인기만을 얻을 수 있도록 감시 받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발전시킬 것을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고 부패하는 경향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법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협 요소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 또는 그 이전의 위험 요소가 된다.
마키아벨리는 이 분석을 로마의 초기 역사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중요성에 대한 추가적인 헌법적 교훈이 있다는 제안과 결부시킨다. 로마는 400년 이상 자유를 지켜 왔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은 그들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속해서 평등을 발전시켜야만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가 그러한 위험과 그 구제책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로마 공화국의 역사로 한번 더 눈을 돌리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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