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았던 대로, 그는 1503년 말에 세사레 보르기아와 줄리어스 2세 사이에 투쟁이 벌어졌을 때 참석했는데, 그가 가지고 있던 인상들은 명백하다.
그가 왕자의 패배에 대한 문제를 쓰러 왔을 때, 그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최악의 상태였다.
그는 즉시 그가 목격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그의 주요한 예로 삼아 고귀한 이중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줄리어스는 보르기아에 대한 증오심을 아주 영리하게 감추어 새로운 혜택이 중요한 사람들을 늙은 상처를 잊게 만든다는 엄청난 실수에 빠지게 했다. 보르지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교황 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갑자기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드러내고 공작에게 등을 돌리며 최후의 몰락을 가져왔다. 보르지아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큰 실수를 저질렀고 마키아벨리는 그의 실수에 대해 심하게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혼란을 퍼뜨리는 재능이 성공한 왕자의 예술 활동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속임수의 예술을 성공의 열쇠로 추천하는 것에 있어서 그가 너무 유창하게 들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좀 더 정통적인 도덕 주의자들은 위선이 영광에 대한 지름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제안을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항상 그런 가능성을 배제해 왔다. 예를 들어, 시세로는 데 오피시스2권에서 그 아이디어를 명백하게 바꿨지만, 명백한 불합리함으로 치부했다. 그는 자신이 영광으로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진정한 영광은 뿌리가 깊고 가지가 넓게 뻗어 있다, 반면모든 영광은 곧 깨지기 쉬운 꽃처럼 땅에 떨어진다. 마키아벨리는 이전처럼 가장 아이러니한 스타일로 진지한 감정을 거부함으로써 대응한다. 그는 18장에서 위선의 행위는 귀족 정부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요구되는 한 많은 어려움 없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고의적으로 도발적인 결론에는 두가지 분명한 이유가 제시된다. 하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너무 단순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너무 자기 기만적이어서, 그들은 대개 모든 것을 전혀 중요하지 않은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왕자들의 행동을 평가할 때, 가장 사악한 관찰자들조차도 대부분 외모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고립되어, 그의 역할에 의해 지속되는 왕자의 입장은 모든 사람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이지만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경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죄가 당신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논하는 또 다른 문제는 그가 가르치고자 했던 새로운 규칙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는 비교적 인습적인 도덕적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15장에서 새로운 왕자들이 보통은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자질들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칭찬 받을 만할 것이다라고 동의하며, 그는 고귀한 미덕을 버린다. 부도덕하게 행동하기를 배우는 과정 통치자들이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악명 높은 장에서도 같은 규모의 가치관이 되풀이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들이 통치자가 속임수가 아닌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칭찬 받을 만한 일인지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계속해서 왕자는 전통적으로 도덕적으로 보여야 할 뿐만 아니라 상황이 허락하는 한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능하다면 올바른 행동에서 벗어나지 말고, 이것이 필요하게 되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15장의 과정에서 매우 다른 두개의 논쟁이 소개되고, 각각은 이후에 전개된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파멸을 초래하는 그러한 자질들이 정말로 미덕의 이름을 가질 만하다고 적절히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소 착각하고 있다. 그는 그들이 파괴되기 쉬운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고결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 제안은 이어지는 두장 모두에서 추구된다. 관대함과 비열함이라는 제목의 16장은 모든 고전 주의자들이 다루는 주제를 집어 들고 그것을 머리 위로 돌린다. 시세로가 데 오피시스에서 관대함의 미덕에 대해 논할 때, 그는 그것을 함께 어떤 악의도 없음이라고 정의한다. 인색함과 탐욕보다 정치 지도자에게 공격적인 광석 마키아벨리는 만약 이것이 우리가 관대함에 의해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미덕의 이름이 아니라 악의 이름이라고 대답한다. 인색하다는 평판을 피하고 싶은 통치자는 자신이 과시적으로 낭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곧그를 그의 백성들에 의해 미움 받게 만들 자유를 위해사람들에게 세금을 매우 많이 내야 할 것이다. 반대로 그가 그와 같은 관대함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그는 처음에는 인색하다고 해도, 결국 더 관대하게 여겨질 것이다. 사실은 관용의 진정한 미덕을 실천하고 있다. 유사한 역설이 다음 장에서도 나타나는데,잔인하고 잔인함이다. 이것 역시 로마의 도덕론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였으며, 세네카의 진부함에 대한 에세이는 그 주제의 가장 유명한 취급이었다. 세네카에 따르면, 자비로운 왕자는 언제나자신의 손을 벌로 돌리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매우 주저한 후와 많이 미루다가뿐만 아니라 최대한 관대하게 해 줄 것이다. 이러한 통설에 맞서 마키아벨리는 다시 한번 그것이 관련된 미덕에 대한 완전한 오해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만약 당신이 자비롭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당신은 살인과 약탈이 시작된 후에야 처벌로 넘어갈 것이다. 관련된 지도자들의 예를 들어 봄으로써 시작할 용기를 가진 통치자의 그것보다 더 관대하다. 마키아벨리는 봉기 앞에서 잔인하게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동료 플로렌티네의 예를 들어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결과는 그들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그 어떤 잔인함보다도 더 끔찍하게 잔인했다. 잔혹한 것으로 여겨졌던 체사레 보르지아의 행동과 대조되지만, 그의 가혹한 조치들이 로마냐를 통일하고 그것을 평화롭고 충성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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