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가 7권과 8권의 이야기의 마지막 단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주장을 좀 더 완곡하고 신중한 스타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의 주요 주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메디치 가문의 부상이다.
그리고 그는 같은 가족이 그의 역사를 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약간의 수당이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느낀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적대감을 부인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지만, 우리가 함께 조각을 한다면 메디케아가 플로렌스 역사에 기여한 것에 대한 그의 감정을 회복시킨다. 그가 신중하게 따로 떼어 놓으려는 논쟁
제7권은 일류 시민이 분열을 초래하는 파벌을 조장하고 절대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민중을 타락시키기를 바랄 수 있는 가장 은밀한 수단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로 시작한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 문제는 이미 담론으로 광범위하게 다루어졌고 마키아벨리는 그의 이전 주장들을 반복하는 것으로 그 자신에게 크게 만족하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공익을 좇기보다 부자들이 부를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위해 그들을 따르는 당파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것이 가능한 두가지 주요한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나는 다양한 시민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들을 치안 판사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을 돈으로 돕고, 부당한 공직에 오르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과 공공 선물로 대중을 즐겁게 해 주며 가짜 인기를 얻게 하고 사람들을 자유를 포기하게 하는 값 비싼 쇼를 펼치는 것이다. ).
이 분석을 염두에 두고 역사의 마지막 두권의 책으로 돌아간다면 마키아벨리의 연속적인 MediceanGove에 대한 과장된 묘사를 뒷받침하는 혐오의 어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극. 그는 제7권 제5장의 부와 권력에 있어서뿐만 아니라그의 시대의 모든 것을 능가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코시모로 시작한다. 자유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죽을 때쯤에는, 코시모가 많은 돈을 빌려 주지 않았던 그 도시에 서 있는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곧 분명해 진다. ’ (1342). 그러한 연구로 인한 사악한 암시는 이미 지적되었다. 다음으로 마키아벨리는 코시모의 아들인 피에로 드 메디치의 짧은 경력으로 옮겨 간다. 처음에 그는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우리는 곧 그의 명예로움이 그가 일련의 자선 대회와 매우 정교하고 다른 축제들을 개최하도록 자극했다는 것을 받았다. 몇달 동안 바쁘게 도시를 준비하고 그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은 화려한 일이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우리는 이미 대중에 대한 노골적인 호소의 해로운 영향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로렌조 시대에 와서 자신의 젊은 시절에 이르렀을 때 반감의 고조되는 분위기를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메디치가의 행운과 자유는 그들의 부패를 결정적으로 너무 심하게 저질러국민들은 메디스를 버린다는 발상 자체에 귀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플로렌스에서는 자유를 알지 못 했던 독재 정권
플로렌스의 폭정으로의 재발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야만인들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가 모든 것의 최악의 타락을 면했다는 인상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 야만인들은 정복했지만, 이탈리아의 가장 큰 도시들 중 어느 곳도 무력화시키지 못 했다. 전쟁의 예술에서 관찰한 바와 같이 토르토나는 밀라노, 카푸아, 나폴리, 브레시아, 베니스가 아니라로마가 아니라마지막으로 가장 상징적인 것으로 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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